신변잡기

26년 인생 중간 정리.

MIRiyA☆ 2012. 6. 10. 10:03

나는 철저히 하고싶은거 위주로 하고 살았다.


유치원생.

온 동네가 나의 놀이터였다. P군을 포함한 또래의 친구들과 '클럽'을 조직해서 집근처의 나드리백화점 뒤쪽 수풀이 우거진 곳에 아지트를 만들고 살았다. 온수 배관이 지나가는 곳은 우리의 비밀기지였고, 후미진 한쪽은 화장실로 사용했다.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비밀통로 지도를 만들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 지붕과 지붕 사이 빠져나갈 수 있는곳은 전부 지도로 만들었다.


초등학생.

성난 상급생에게 쫒기던 S군을 차 뒤에 숨겨주고 모른척해준 후 S와 친해지게 되었다. 우리는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읽고 그걸 모작해서 껌종이에 소설을 쓰는게 낙이었다. 소련 강제수용소 죄수의 비참한 삶을 묘사하는게 어릴땐 그렇게 재미있더라. 지금 이 시간도 내가 글을 쓰고 있는건 아마 이 시절에 소설을 많이 써서 그렇지 않을까 싶다. 글솜씨는 앞으로도 내 인생에 많은 도움이 될것이다.


중학생.

창세기전2라는 게임을 게임을 해보고 완전 매료되어 부채에 게임 지도를 그리고, 노트에는 게임에 나오는 칼을 그렸다. 크룩스 프로덕션이라고 게임회사를 꾸미고 친구들에게 개발자, 기획자, 디자이너 등의 역할을 배분하고 명함을 만들어주었다. 당시에 만난 K양은 나에게 색감의 개념에 대해 알려준 사람이다. #FF0000과 #970012의 차이 같은거 말이다. 그때 내 로고는 4색의 네잎클로버 잎이였는데, 각각의 색상을 20번 넘게 퇴짜맞고 뭔가 느낀게 있었나보다. 


그림을 그렸다. 밀리터리를 좋아해서 전투기 그림과 군함 그림을 주로 그렸다. 

그림, 지우개와 내가 좋아하는 Staedtler Mars Micro 0.3mm 샤프만 있으면 모든게 다 이루어졌다. 아버지의 눈을 피해 녹색의 책상 덮개 아래에 종이를 넣고 그렸다. 백과사전을 쌓고 그 사이에 스탠드를 꺾어 넣고, 유리판을 덮어서 라이트박스를 만들어 그림을 그렸다. 이러나 저러나 미적감각은 중학생때 많이 개발된것 같다. 포토샵과 골드웨이브, 나모웹에디터, 플래시를 이때 맨땅에 헤딩하기로 혼자 배웠다. 나이 먹고 이때 해놓은게 많은 도움이 되더라. 이맘때 지금 베프인 B군도 만났다.



고등학생.

전교 3등으로 입학했다. 하지만 졸업할때는 고려대 세종캠퍼스 추가합격, 그것도 4차 추가합격으로 완전 턱걸이로 들어갔다. 2학년 이후로 고등학생 내내 카페 운영에 몸을 던진 탓이다. 2학년때 반장이었던 나는 교실 컴퓨터 캐비닛 열쇠를 복제해서 쉬는시간마다 카페의 스팸글을 지웠다. 남들이 방과후 자율학습 할 시간에 학교 미술실에서 카페 배너를 그렸다. 전교 석차가 100등 넘게 떨어지고, 마지막으로 본 모의고사보다 수능 성적이 20점 덜 나왔다. 수능 끝난 후 진학사에서 재수시키라는 전화가 오고, 어머니는 그 전화를 받고 흐느껴 우셨다. 



대학생.

대학교 1학년때 호일펌을 해봤다. 정말 거지같은 스타일이었지만 뭔가 반항적인 느낌이라 그러고 다녔다. 방 청소하면 쓰레기가 60리터씩 나왔다. 그렇게 살다가 좋아하던 사람에게 큰 고백 이벤트를 준비하고, 이후에 거하게 차였는데.. 그게 나의 사회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중2병이 비로소 그때 좀 사그러들었지 싶다. 여담이지만 망할놈의 호일펌 3번한 이후로 생긴 지루성 두피염때문에 탈모 고민이 많다. 내가 정말 미쳤었지.


대학교 2학년땐 블로그를 만들었다. 다음 카페 운영하다가 다음 블로그를 자연스럽게 만들었는데, 다음의 커뮤니티 본부장 M모님이 내 블로그에 관심을 보인걸 계기로 블로그에 매진하게 되었다. 네이버를 깠더니 사람들이 호응이 좋더라. 그 이후로 인터넷 업계 동향은 내 취미요, 관심사가 되었다. 전공 수업이 3개를 포기하고 제주도에서 열린 다음 개발자 컨퍼런스에 참석했다. 뭔말인지 솔직히 단 한마디도 이해할수가 없었지만 류한석님, 김중태님, 서명덕님 등등 처음 만난 인연이 많다. 이 이후 CSS Design Korea 행사에도 참석하고, 여러 IT관련 행사에 관심갖고 많이 찾아다니게 되었다. 나는 IT 업계가 정말 좋았다.


대학교 3학년 1학기땐 학사경고를 받았다. 카페관련한 책 쓴다고, 카메라 사서 사진찍으러 다닌다고 이핑계 저핑계 이리저리 쏘다니고 시험지는 백지로 낸 까닭이다. 정말 공부를 하나도 하지 않았다. 교수님께 죄송스럽지만 나는 정말 코딩이 싫었다. C는 포인터 이후로 포기했고, 자바는 헬로월드 쓰는것도 모른다. 모를때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한번 이들을 포기하게 되니 뒤에 가르쳐주는건 암만 해도 모르게 되더라. 까만 화면에서 덧셈 뺄셈만 하는게 너무 싫었다. 그래서 컴퓨터 네트워크 과목 과제는 플래시로 만들어 냈다. 학점은 개판이었지만 나는 그동안 블로그를 운영했다. 


휴학하고 2년동안 KMA에서 원없이 사진을 찍었다. 나를 고용해 일을 준 사람은 다음 카페 운영하던 시절에 메일로 험하게 클레임 걸었던 전 다음 직원이다. 그 이후로 사진찍는 기술로 IT관련 행사 싸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어주고, 블로거라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과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버티컬 검색 서비스 관련 리뷰글을 쓰고 100만원 당첨되어 당첨금 받으러 뛰어가다 자빠져서 머리가 깨졌다. 얼굴 절반이 마비되어 입원했다. 입원 3주차인가, 네이버 카페의 전략 간담회가 있다길래 하루만 좀 나가게 해달라고 의사에게 부탁했지만 지금 나가면 그냥 퇴원이라고 으름장을 놓더라. 뿌리치고 자가 퇴원해서 간담회에 참석했다. 그리고 그날이 마침 내 생일이었고. 세수할때 비누가 눈에 들어가고, 물마실때 한쪽으로 질질 샜지만 기분은 좋았다.


저거 다친것 때문에 군대는 공익을 가게 되었고, 공익 생활하다가 앱개발 일을 받아 실제로 뭔가 만들게 되는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 일을 준 사람은 내 블로그 애독자였다. 이러나 저러나 대부분의 일감들이 블로그를 통해 들어왔다. 블로그를 운영하게된건 정말 잘한 일 같다. 


블로그 처음 만들던 2006년도엔 뭣도 모르고 남이 쓴 Ajax 관련 글에 아는체하며 댓글 달았다. 그러다가 2012년 지금 자바스크립트 공부하며 모르는거 찾아보다 그 글을 보게 되었고, 예전의 댓글을 다시 확인하니 아주 부끄럽더라. 지금은 학과 공부랑 연계하여 웹언어를 공부하고 있는데, 하면 할수록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컴정 나와서 C랑 자바도 못한다는 열등감을 매꾸고, 얼마나 더 발전할지 매일매일 기대하며 몇날 며칠 밤을 새며 작업한다. 


재미가 있기 때문에 지치지 않는다. 학점은 이미 2점대 중반이라 시험같은건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내가 원하는것만 공부하고 있다. 어차피 이 성적갖고 대기업 못가잖아. 원서 넣자마자 아마 DB상에서 걸러질게 뻔하다. 평소에 만들어보고 싶었던 학과 홈페이지, 자취방 정보 서비스.. 이런걸 다 학교 수업에 연계해서 프로젝트로 진행하니 아주 살맛이 난다. 교수나 강사가 내 작품을 어떻게 평가할지는 관심이 없다. 물론 좋은 점수 받으면 좋지만 일단 내가 만족해야 하는것이다. 


CSS Sprite도 써보고, jQuery의 막강함도 느껴보고, Ajax라는것도 맛보고, 가변 가로폭의 레이어를 가운데 정렬하고, border-style, border-width, border-color 셋을 border 하나로 묶으면서 만족감을 느낀다. PHP를 통해 DB연동을 하니 진짜 뭔가 작동하는 서비스가 나온다. 정말 신기하고 재미있다. 나도 이제 개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도 이제 누구한테 처음부터 끝까지 다 물어보지 않고 스스로 문제점 찾아서 해결하고 새로운 기술을 적용해가면서 공부할 수 있는 작은 단계까지 올라갔다. 내가 생각하고 내가 디자인한걸 정말 구현할 수 있게 되니 기분이 좋다. 그 전까지는 할 줄 아는 언어라곤 플래시 액션스크립트가 다였다.


뭐 여튼 4년전 휴학할때 잠시 만난 L군은 혼자서 게시판 하나를 뚝딱뚝딱 만들었는데, 지금 와서 그 뒤를 따르고 있자니 감회가 새롭다. 개발이란게 이렇게 재미있는것이었구나. 이젠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으로 코딩하는 미친사람들 기분도 어느정도 이해가 된다. 뭐 여튼 요즘 재미있다.


나는 정말 나 살고싶은대로 막 살았지만 운이 너무 좋은 탓에 모두가 잘 풀린것 같다. 하고 싶은 것을 하기 때문에 재미가 있는거고, 재미가 있으니 지치지 않고 계속 할 수 있다. 그리고 좋아하는 일은 잘 할 수 밖에 없는거다. 딱히 머리가 나쁘지도 않고, 운도 좋고, 인복도 많은 내가 정말 좋다.


흥미를 쫒아 사는것도 나쁘지는 않은것 같다. 이 기세로 계속 달리면 정말 많이 발전할것 같다. 올해에는 뭘 이룰 수 있을지 기대된다. 180일이라는 긴 시간동안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이렇게 계속 공부하다보면 '아는체 할 수 있을 수준'에 올라갈거고, 더 공부하다보면 '잘난체 할 수 있을 수준'에 올라갈 것이고, 더 공부하다보면 '부끄러워지는 때'가 오겠지. 그리고 더 하면 아마 '당연하게 생각하는 수준'까지도 올라갈게다. 시간 낭비하지 말고 재미있는것만 냅다 파며 압축적으로 살아보자. 


열정!




ps. 디아블로3는 법사 여캐 레벨 58이다. DPS는 8000정도 나온다.

하고싶은 일 하면서 게임도 할 수 있다! 난 승리한 인생을 살고있는것 같다.


ps2. 조만간 패트병 100개를 모아서 땟목을 만들어 학교 근처 고복저수지를 횡단해볼까 한다.

미친짓은 그거 자체로 정말 재미있다. 나이먹고 돈 좀 더 벌고 나면 그땐 아마 자가용 비행기도 만들 수 있을거야.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는 지가 우주선도 만들더만. 쩔어주네 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