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라는 놈이 워낙에 실험을 좋아하고, 굳이 실험이 아니라도 일상 생활에서 남들이 보기에 충분히 실험적인 일을 많이 하는터라 쇼킹한 삽질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라이프 스타일은 거의 시트콤이라고 보면 되겠죠.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즉 제 3자의 시점에서 제가 혼자있을때 하는 행동 모습을 보면 정말 웃길겁니다.
가령 방금 전에 제가 라면을 끓였는데요, 맨날 하던것처럼 물 세컵 붓고 불 올린다음, 봉지 뜯고 건더기 스프를 넣고 물이 끓는 동안 큰 쟁반을 꺼내 냄비 받침을 올려놓고, 김치를 한통 꺼내고, 식은 밥이 있나 확인합니다. 오.. 식은 밥이.. 애매하게 남아있습니다. 근데 이거 귀찮습니다. 라면이 다 끓으면 아마 쟁반 위에 양은 냄비 하나랑 김치 한통이 올라가고, 숫가락과 젓가락은 구석에 위태롭게 낑겨져 방안으로 들고들어가게 될겁니다. 그러면 이거 밥을 어느 타이밍에 넣을지 애매해지지요. 따로 밥그릇에 넣어서 가져가기는 너무 귀찮습니다. 냄비 뚜껑위에 올려갈수도 없고 말이지요.
그래서 저는 실험을 해버렸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끓기 직전의 냄비 안에다 밥을 넣어버린거죠. 그리고 뚜껑을 닫고 한 3분쯤 방안에서 인터넷질을 하다가 돌아오려고 하는데, 아버지 호통이 들립니다. 뛰어나가니 물이 넘치고있었어요. 이상하죠. 보통 그 타이밍이면 끓기는 커녕 공기방울 보골보골 올라올 타이밍인걸요. 뚜껑 열어보니 대박입니다. 숭늉이 끓고있었습니다. 이런 빌어먹을.
어쩌겠습니까. 그냥 거기다가 면 집어넣고 젓가락으로 꾹꾹 눌러 짓이겼습니다. 이 물이 뜨거운지, 끓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밥알과 콩 몇알이 허옇게 부글부글 끓고 있었을 뿐입니다. 다 조리해서 가져가 먹어보니 맛이 참 아스트랄하더군요. 국물은.. 구수했습니다. 정말 숭늉 맛이 났습니다. 비위가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꽤 정신적인 데미지를 주었습니다. 라면 면발은 그리 나쁘진 않았습니다. 가끔 프로세스 최적화로 걸작에 가까운 면발 퀄리티를 내며 만족하곤 하는데, 오늘의 이것은 아마 졸작 수준이었던것 같네요. 그리고 최악은 역시 숫가락으로 밥 떠먹을때죠. 많이 안습했습니다. 그리 좋지 않습니다. 숫가락 집어넣을때 느낌이 괴이합니다. 그리고 식은 밥 말은 그런 느낌이 아니라, 밥에 열이 있습니다. 밥이 뜨겁습니다.
좋지 않습니다.
앞으로 라면 끓일때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밥은 최후에 투입해야겠습니다.
너무나 리스크가 많습니다. 글쎄요.. 라면 끓고 난 다음 투입하면 어떨까요?
신이 내린 음식이라 믿고 먹는 라면이지만 가끔씩 이럴때는 슬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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