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

머릿속의 돌을 깨야합니다.

MIRiyA☆ 2008. 4. 23. 02:34

http://ittrend.egloos.com/3713650

 

이런 짧고 굵은 글 읽을때마다 공부와 인사이트의 부족을 여실히 느끼게 됩니다.

 

"카페같은 플랫폼을 만들었으니 컨텐츠는 계속해서 쌓일거고, 컨텐츠는 쌓아두기만 하면 접근성이 떨어져 무의미해진다. 그러니 컨텐츠를 수요자에게 연결시켜주는 검색이 뜨는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지금은 이런식으로 인과관계가 지극히 당연한 일인양, 예상할 수 있었던 일인양 '당시 전략가들은 왜 검색에 신경을 쓰지 않았을까?'라는 의문감을 몇그램 묻혀서 민간인 티가 팍팍 나는 치기어린 발언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전략가들이 바보였을까요? 아닐겁니다. 뭔가 인사이트가 조금 부족했거나 타이밍이 안맞은 탓이겠죠. 아무리 서비스를 잘 만들어도 시류를 타지 못하면 사장되기 마련이고, 아무리 멋지게 아이디어를 내뿜어 기획을 해서 개발을 해도.. 정작 실제 시장의 반응은 냉담하여 자기 스스로 호흡기를 제거해야 하는 그런 마음아픈 순간들이 태반이었을겁니다.

 

이렇게 아무리 뛰어난 인사이트와 능력을 갖고있어도 타이밍 안맞아서 좌초되는 경우가 허다한데, harris님의 글을 읽으니 머릿속의 바위가 반쪽이 나는 기분이 들더군요. "나는 아예 제일 기본적인 인사이트도, 오픈마인드도 없이 살아왔다." 나이가 몇살인데, 한 일이 뭐가 있다고 벌써부터 매너리즘에 찌든건지.. 위기감이 들었어요. 이대로 성장하면 연봉 4억은 커녕, 몇조 벌어들였다는 내 또래 페이스북CEO 뒤를 따라가긴 커녕, 진짜 제대로 찌지리, 얼치기가 되겠구나.

 

 

얼마 전에는 알바중인 회사 홈페이지의 행사 신청폼 개선안 기획을 했는데요, 하다보니 예전의 틀을 그대로 답습하는 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단지 DB의 고객사 정보와 연동하여 자동완성 편의기능 추가와 자동저장기능을 통한 안전장치 정도를 추가하고, 흔히들 말했던 'Web2.0식 디자인'을 걸쭉하게 묻혔지요. 뭐 뻔하잖아요. 핵심을 관통하지 않는 자잘한것들. 때때로 강조되는 큼직한 폰트 사이즈와 예쁘고 위치 좋은 버튼, 새로 추가된 부분에 노란색 강조가 된다음 서서히 사라지는 효과라던지.. 이런 부분 물론 보기 좋고 사용성이나 유저 경험에 있어 아주 바람직하지만 이게 이용자의 목적과 부합되어 최고의 사용성을 내는 혁신적인 개선은 아니라는거지요. 나이도 얼마 안먹은놈이 벌써부터 머리가 굳은것 같습니다.

 

어찌된게 PT를 만들어도 뽀대가 나지 않으면 작업 능률이 올라가지 않아요. 지금 추세로 볼때 어느정도 제 스타일은 만들어지기 시작한것 같고, 좀 더 연습하면 빠르고 능숙하고 정밀하게 기획안을 만들 수 있을것 같긴 합니다만.. 처음 머릿속에서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과정이 너무 오래걸리네요. 사무실의 모든 티백과 분말커피 종류를 섭렵하고 화장실에서 폰게임을 하거나 스케치북에 이거저거 그려가면서 머리를 굴리고.. 그러다가 뭔가 촉진제가 될만한 작은 '삘'이 딱 떠오르면 바로바로 메모해놨다가 PT를 통해 시각적으로 구현해냅니다. 거기에 살 붙이고 살 붙이고 하다보면 이게 어느정도 형체를 갖추어 그럴싸해지고. 느릿느릿 몇일이 지난 후죠. 그럼 사무실에 있는 태클 잘 걸고 서로 잘 싸우는 시니어급 디자이너 누나에게 보여주며 일부러 욕을 얻어먹습니다.

 

말로는 사용성 사용성을 외치면서 간지 프랜들리와 실버 프랜들리사이에서 저울질을 하면서 은근슬쩍 간지로 마음이 치우치는 제 모습.. 다섯살 많은 누나와 싸울 경우 대략 이런걸로 싸워요. 메일주소 입력칸을 만드는데, "엠팔, 한메일, 파란, 네이트 뭐 기타 등등을 풀다운 폼으로 만들어서 집어넣는게 좋다" 이런식으로 누나가 외치면 저는 "아니 대체 회사 메일만 쓰는 사람들이 무슨 한메일에 네이버 선택이냐, 그냥 텍스트 입력창 하나 만드는게 차라리 모양도 깔끔하고 편할거 아니냐" 이렇게 반박을 하고, "머리좋은 놈들 엄청 모여있는 다른 포탈들도 그렇게 하니 그렇게 하는게 맞다" 이런식으로 어처구니없는 반박을 듣고 기분 상하는 순서지요.(둘 다 카네기 처세술을 읽었지만 실천은 못하고있습니다.)

 

누나는 경험이 풍부하니 여러 대단한 사람들 하는걸 보고 배운게 많이 있고, 눈도 아주 높은 상황인데, 몇달 경험도 없는 얼치기 제가 들어와서 웃기게 하고있으니 얼마나 눈에 차지 않겠습니까. 이해는 합니다만 자존심 상해요. 내가 어리건 경험 없건 상관 없이 그사람들이랑 비교해서 부족해보이는건 질색이거든요. 뱁새 가랑이 찢어지는거죠.

 

어찌보면 저는 마조히즘이 다분한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시에 욕을 먹으면서, 싫은 소리 들으면서 자존심이 훼손당했다는 오만 잡생각 - ㅅㅂ 나도 아이큐 최상위권이거든? 그놈들만 머리 좋아? 머리 좋아서 뭐? 머리 좋은거랑 입력폼 짜증나게 만드는거랑 무슨 관곈데? 걔들이 했다고 무조건 다 따라해? 맨날 뒤만 따라갈거야? - 등등으로 분노가 부글부글 끓으며 스트레스를 받지만, 곰곰히 더 생각해보고 생각해보면 내가 너무 것멋만 들지 않았나, 진정으로 유저가 원하는게 뭘까.. 맨날 나는 남이 기획해논거 보고 "과거의 유저 경험을 철저히 무시하는 안드로메다급 뜀뛰기"라고 신랄하게 비난하면서, 정작 나는 것멋만 들어서 예의 그 뜀뛰기를 스스로 재연하지 않나 되새겨 생각해봅니다.

 

신나게 기획안을 만들어서 거의 구체화시킨다음에, 관련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팀의 실무자들을 모아놓고 PT를 하고 의견을 모으는데, 아니 이런.. 이론적으로 충분히 구현 할 수 있지만 구현할 경우 오히려 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경우가 발생을 하고, 프로젝트는 추진 가치를 상실하고 공중에 붕 떠버리는 경우가 있더라구요.

 

예를 들어 행사신청폼을 기획하며 결제 과정중 무통장 입금 뿐만 아니라 카드결제를 도입하려고 하는데, 아니 이거 고객이 워낙에 기업 위주로 나가다보니 대부분 법인카드로 결제를 해요. 이러다보니 법인카드 인증서가 개인의 PC에 깔려있지 않으면 고객이 결제를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더라구요. 흔히 쇼핑몰 같은 경우 물건을 다들 개인 카드로 사지만, 행사신청의 경우 법인카드로 긁어버리니 악용의 소지때문에 인증서를 발급해주지 않아 온라인 결재 과정이 복잡해지거나 필요가 없어지는경우죠. 거기다가 현재 봉투에 풀칠하고 도장찍어 보내는 세금계산서를 전자세금계산서로 발행할 수 있게 하는 프로세스를 넣을라 하니 현재 회계시스템이랑 연동이 되지 않고서는 할 일을 3배 반복하게 만드는 난감한 시츄에이션도 발생. 하려면 아예 회계시스템을 갈아엎고 ERP연동해서 하던가, 어정쩡하게 기능만 추가하느니 안하는게 낫다.. 이렇게 되어버린거죠.

 

어째어째 하다보니 제가 처음으로 PL을 맡게되어 진행하는 행사신청폼 기획안에서 카드결제와 전자세금계산서 발행 프로세스가 쏙 빠져버렸습니다. 비록 풀세트로 깔끔하게 끝내지 못했지만 짧은 시간에 많은 경험을 한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팀장님이 항상 강조하는 내용이고, 요즘들어 뼈저리게 느끼는게..

"100% 완성해서 오픈하려고 하지 말고, 70%라도 완성했으면 오픈해라" 이런 말이죠.

100% 완성하려고 하다가 중간중간 터져나오는 이슈들때문에 발이 묶이다보면 결국 오픈은 몇달씩 지체되기 마련이고, 그러다보면 거시적으로 흐름을 제때 타지 못해 서비스가 폭삭 망하는 경우도 생긴다는거지요. 일단 만들어 오픈해서 매듭을 지어놓고, 거기에 더해서 실제 운영을 해가며 추이를 보고 유지보수개선을 진행해가는게 더 유연하고 즉효성이 빠르다는 점. 만약 사람이 수퍼기획자에 초 천재여도 일단 신이 아닌 이상 예상에 따른 기획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아무리 정밀하게 예측을 해도 이용자의 행태는 그것과 다르게 흘러갈 수 있는거죠.

 

이런건 카페 운영할때부터 느껴왔습니다. 휘하 운영자들의 능력을 신뢰하지 못한 저는 제가 하면 100% 할 수 있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맏기면 70%밖에 못한다 하여 대부분의 일을 제가 도맡아 하기 일쑤였고, 그러다보니 저 혼자의 load가 가중되어 일이 밀리게 되고, 전체적인 스케줄이 지연되어 40%의 성과도 못내는 경우가 태반이었습니다. 물론 거기 더해 휘하 운영자들이 일을 배울 기회가 적어지게 되고, 계속해서 무능력한 상태로 남아가는 악순환이 계속되지요. 권한 위임의 중요성. 일을 휘하 운영자에게 맏기고, 어려움을 호소할 경우 방법을 전수해주는게 멀리 봤을때 훨씬 바람직한 일이라는것.

 

아무튼 말이 주저리주저리 길어지고 다른 방향으로 새버렸는데요, 방구석에 틀어박혀 블로깅만 하던 사람이 사회 물을 좀 먹고나니 뭔가 굉장히 느낀게 많아요. 얼마나 제가 무식한지, 얼마나 다듬어지지 않았는지 절실히 느낍니다. 머릿속이 늙고 생각이 굳었어요.

 

락 브레이킹!

5월달에 할것이 정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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