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가전제품을 만든다? 난 반대.

어제 지인의 아이패드를 오랫동안 주물러보고 크게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 집에 돌아올때쯤 난 미쳐가고있었다.

애플에서 선풍기를 만든다면 버튼 디자인을 어떻게 했을까? 버튼을 최대한 줄이려고 하겠지? 깔끔한 터치 형태로 만들까, 아니면 직관적이고 손맛있는 아날로그 버튼으로 만들까? 선풍기 날개 형태는 어떻게 했을까? 아마 팬리스 선풍기를 사용하지 않을까? 애플에서 만든다면 뭔가 크게 다를텐데, 블루투스를 내장해서 가전제품끼리 소통을 하는거다. 아.. 그럼 가격 경쟁력에서 밀릴텐데? 선풍기 해봐야 5만원 이하에 옥션에서 살 수 있잖아. 애플에서 만들었다고 20만원 넘는 선풍기를 사는건 또 아니올시다일거라구...

망상을 해버렸다. 이런식으로 미친 애플빠가 탄생하는거다.. 인간의 존엄을 위해 저항해야한다.

애플이 가전제품을 만든다면 온 집안이 흰색 천지가 될 것이다. 종국에는 내 피부를 표백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매 1년마다 온 집안의 가구, 가전, 식기 등등을 몽땅 새 버전으로 갈아치워야 직성이 풀릴것 같다. 애플은 필요없는 물건을 사고싶게 만든다. 사실 애플의 제품이 없어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다. 다만 애플의 제품을 사야 인생을 제대로 즐기는것 같고, 문명을 향유하는것 같고, 남들보다 앞서있어 보이게 느끼는게 문제다.

맨날 청바지에 검정 폴라티 입고 나와서는, 후줄근하게 신발끈도 제대로 안묶는 양코배기 안경재비는 거의 교주 수준으로 추앙되고, Gorgeous, Beutiful 등등의 찬사를 말할때마다 니 말이 맞다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쓸데없는걸 사고싶게 만드는게 이 사람의 특기다. 그리고 워낙에 제품을 잘 만들기 때문에 못된짓 조금 해줘도 사과 회사라서, 유저를 최대한 배려하는 사과 회사라서 그렇다고 자동으로 방어해줄 사람들이 등장한다. 새 물건이 나올때마다 방망이로 두들겨 박살을 내거나 부품을 다 까뒤집어 진열해서 보여주거나 심지어는 믹서기에 갈아대는것도 압도적인 인기에 대한 반증이고, 반항이다.

그리고 뭔가 물건을 만질때마다 생각한다. 애플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얘들이라면 이런 비루한 여백을 용서했을까, 이짓 하는데 클릭을 대체 몇번이나 해야하나, 애플이 이걸 만들었다면 니들은 장사 접어야해 .. 등등의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내가 SLR클럽과 중고나라 등등을 오가며 아이패드 중고가격을 알아보고, 구매대행, 배송대행을 알아보며 애플의 가을 출시를 염두하는 모습을 보며 내 자아를 뺏겼다는걸 느끼게 되었다. 버락 오바마가 아이패드를 왜 주전부리 취급했는지 알것 같다. 이놈들은 내 시간과 자유를 뺏는다. 

노트북을 사용할때 내 귓구멍은 이어폰에, 손가락은 키보드에, 눈은 스크린에.. 마치 전자제품에 기생해서 살아가는것 같은 느낌이다. 심지어 벽에 연결된 전원 케이블이나 랜선을 보면 섬뜩하다. 나는 벽 너머, 케이블 건너 거미줄처럼 엮인 인터넷의 바다에 관통되고 연결되어 울고 웃는 인형이 아닌가.. 내 생활에 더 깊숙히 들어온다고 생각하니 정말 무섭다. 하지만 그게 행복할거라 생각하니 더 무서운거다. 조금이라도 전자제품에서 벗어나 쉴 공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나는 일주일후 아이패드를 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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