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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단속 민원 전화가 왔을때의 콜센터 대처법

MIRiyA☆ 2010. 4. 15. 12:12

제가 지금 주차단속 업무를 하는 공익 근무를 하고있습니다. 네, 저 공익이에요.


아무래도 단속업무를 하다보니 힘든 점이 많습니다. 일단 4~5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일을 어쩔 수 없이 집행해야한다는거, 화가난 민원인의 전화를 받아야한다는거, 새벽에 출근해야한다는거, 단속 프로그램의 오작동이 잦다는것 등등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그중 민원인 전화가 제일 힘든데요, 하루에도 몇백건씩 단속해오는데, 이 중 몇몇은 억울하다던가 화가난다던가 하는 문제로 단속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옵니다. 이건 어디 블로그에 악플 달리는 수준의 항의가 아니에요. 30분간 쌍욕을 퍼붓다가 10분쯤 숨 돌리면 또다시 리프래시된 새로운 사람이 쌍욕을 하고, 또 걸려오고, 또 걸려오고.. 이런게 하루에 7번까지 갈 때도 있습니다. 완전 진 빠지는거에요. 전화 받는 저희 주사님은 자살하지 않을까 걱정까지 됩니다.


여러차례 전화 받은 경험을 살려 가능한한 충돌을 피하며 민원 전화 받는 방법에 대해 적어보겠습니다.


1. 안녕하세요라는 말로 시작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전화건 민원인은 절대 안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단속이 되어 열이 뻗쳐있는 상태에서 안녕하세요? 하고 물어보면 시팔 내가 지금 안녕하게 생겼냐며 분위기가 몹시 악화된다. 오만 갖가지 계층의 사람들이 다 전화건다는걸 인지하자.


2. 겉과 속이 다르다는걸 명심한다.

민원인이 전화걸었을때 첫마디는 온화할지 몰라도, 뒤에선 부글부글 끓는 화를 삭이며 최소한의 예를 지키고 있다는 것을 항상 가슴에 담아둔다. 속으로 삭히고있는 화는 말 약간 잘못하면 바로 터져 나오고, 30분간 욕을 먹을 수 있다.


3. 약자의 입장에서 말투를 온화하게

참 당연하며 끝까지 가져가야하는 기본이다. 말투가 고압적이거나 선생님이 잘못해서 단속된거다- 이런식으로 이야기하면 민원인 입장에선 이 철밥통 개자식들이라면서 욕 나오는거다. 단속 공무원은 강자가 아니다. 위에서 단속하라는데로 단속해서 욕먹고 책임은 져야하는 약자다.



전화 받는 순서.

1. 단속되어 화가나고 억울한 점을 온화한 말투로 이해하고 공감한다. 

2. 해결 방법을 알려준다. 고지서가 날아오면 이의제기 신청 가능.

3. 진심으로 안타깝지만, 권한이 없어 당장 빼줄 수 없다는걸 조심스럽게 알린다.


일단 1단계에서 대부분 구구절절이 하소연을 늘어놓습니다. 학원차인데 학생 데리러 집 들어갔다, 짐 내리는 중이었다, 잠시 화장실 갔다, 고기 계산하고 있었다, 나 하루에 4만원 버는데 일주일에 딱지 3장 끊으면 장사 어떻게 하나, 사진에는 안찍혔지만 나는 뒷좌석에서 자고있었다. 등등... 길면 30분 넘게까지 갑니다. 만약 이 단계에서 욕이 나온다는건 전화 받을 때 공감이 부족했다는 것이죠. 민원인이 전화받는 공무원을 적이 아니라 똑같은 박봉 받고 힘들게 일하는 서민이라는걸 인식시키면 그 시점에서 더이상 욕이 나오지 않습니다.

 

하소연 내용이 돈 내기 싫어서 대는 핑계건, 아니건 간에 정말 딱한 사정이라는걸 공감해줘야합니다. 필수적인 코스에요. 그래야만 욕을 먹지 않고 통화를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 통화 내용은 "네, 네, 네에.. 네. 그렇죠.. 네, 네, 이해합니다. 네, 네, 저런.. 네, 그 부분은 단속원들에게 주의를 주겠습니다. 네, 이해합니다." 이런식으로 흘러간다. 이걸 갖고 "선생님이 잘못하셨으니 단속이 되었지요. 그걸 못보시면 어떻게 해요, 그게 선생님 잘못이죠. 나중에 종이 날아오면 이의제기 하시라구요, 원하시는게 뭐에요" 이런식으로 대응하면 정말 한도 끝도 없이 욕 먹습니다.


예전에 처음 전화 받을때는, 너무나 욕을 많이 먹어서(2시간 내리) "아 씨발 공익은 인간도 아닙니까? 위에선 까라 하고 욕전화는 있는데로 다 받고 내가 뭘 잘못했는데, 그 양반들이 그렇게 끊어오고 난 전화만 받고 당신은 억울하고 나는 욕먹고 해결해줄 방법은 없고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렇게 욕을 먹어야하냐고! 당신만 욕할줄 알아? 난 내가 하지도 않은 일 갖고 욕만 먹어야돼? 내 이름은 왜 물어보는데? 감사원? 신고해, 배 째라고. 내가 그렇게 미우면 차라리 와서 화 풀릴때까지 때리지, 난 병가 쓰고 누워있으면 되니 욕 전화 받는것보단 그게 훨씬 낫겠네." 이런식으로 극한으로 쏘아붙이고 끊어버린 적도 있습니다만 별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아마추어적인 대응이죠.


일단 전화건 사람들은 크게 세가지 목적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납부 방법에 대한 안내를 원한다던가, 2. 억울함을 하소연하고 선처를 호소한다던가, 3.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어떻게든 빼보려 한다던가.. 세가지죠. 1번은 아는데로 최대한 친절하게 이야기하면 되고, 2번의 경우 하소연은 들어주고 선처는 권한이 없으니 절차에 따라 이의제기 신청을 하면 된다고 안내해주면 됩니다. 3번의 경우.. 그냥 풀이 꺾일때까지 흘리는 수 밖에 없어요. 해결이 되던 말던 스트레스를 해소하려 하는거니까.. 혼자 주화입마되어서 상대방이 듣건 말건 욕을 하는데, 저 같은 경우는 수화기를 책상에 내려놓고 제 일 보다가 소리가 잠잠해지면 다시 전화를 받습니다. 신기한건 이걸 몇분동안 이래도 욕하는 사람 입장에선 내가 딴청 부렸다는걸 모르는거에요. 


단속 업무는 정말 3D 업종입니다. 남에게 미움 받을일을 어쩔 수 없이 해야하는것 만큼 괴로운일이 또 있을까요.. 한가지만 꼭 유념하시면 그나마 먹을 욕을 많이 줄일 수 있습니다. 공감하고 이해하고 친절하라는거죠.



진상의 몇가지 유형.

1. 나만 단속했다. 

당시에 내 앞뒤로 차들이 여러대 있었는데 오직 내 차만 끊은 이유는 뭐냐? 단속원들이 외제차만 제외하고 안끊는것도 아니고, 단속 시점에 보이는 차들은 다 끊는다. 그 사람 차만 맘에 안들어서 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아마 단속된 이후로 다른 차들이 추가로 주차했다던가, 단속된 사람들이 용지를 치웠다던가 했겠지.


2. 사이렌을 울리지 않았다.

원래 사이렌 울리라는 법이 없다. 그리고 우리들은 주변에 차주가 있으면 절대 딱지를 끊지 않는다. 보는 앞에서 단속당하면 그게 얼마나 기분 더럽겠나. 경고하고 단속하는 법은 없다.


3. 잠시 화장실 갔는데..

우리도 PDA로 단속사항 입력하고, 스티커 출력해서 단속용지에 붙이고, 단속용지를 차량 위에 올려놓고 사진 찍고 마무리하는데 몇분씩 걸린다. 누가 잠시 주차했건 뭐건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는거다. 인력 단속은 주변에 차주가 없는지 확인하고 집행하는 즉시 단속이라 잠시라는 말로 빼줄 수 없는거다.


4. 내가 차에 있었는데

찍은 사진에 선생님 안나와있다. 그리고 차에 있었다면 딱지 떼는걸 보고만 있었겠나.(뻥치지 마라) 뒷좌석에 자고있었다고? 아오 씨발 내가 지금 월급 20만원 받는데 4만원짜리 과태료 대신 내줄까?


5. 단속원 전화번호 알려달라.

단속원 전화번호를 알아서 뭘 하려 하느냐? 전화 걸어서 얼마나 해코지를 하려고 전화번호를 알려달라는건가. 규정상 절대 알려줄 수 없다.



이중 단속원 전화번호 알려달라는게 제일 악질적입니다. 화풀이 전화하겠다는거고, 이런건 제 선에서 끊어버려야합니다. 새벽에 전화하고 뭐하고 아주 장난 아니니까요. 그리고 증거 사진을 찍어놔도 공사장이었다느니 내가 차에 있었다느니.. 이런건 말이 안되는겁니다. 말이 안되도 굽히지 않고 소리를 질러대요. 이건 뭐 공감을 하고 뭘 해도 해결되는게 없습니다. 아우 그냥 대한민국의 시민정신에 하소연해야죠. 얼른 이 자리를 뜨는 수 밖에는 도리가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단속 공무원에게 묵념. 그리고 수많은 콜센터 직원들에게 묵념. 그리고 중간에 끼어서 고생하는 수많은 공익들에게 묵념.


깡패같이 블로깅하는 저는 이 일 끝내고 사회로 복귀할때 성격 엄청 온화해지지 않을지 ... -_-?



제 블로그에는 아이폰과 DSLR 카메라에 대한 정보와 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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