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이야기/카메라 강좌

찍으려면 혼신을 다해 찍고, 아님 아예 찍지를 마라.

MIRiyA☆ 2009. 6. 23. 03:05

이 글은 카메라에 대해 심층적으로 알고있는 사람들만 이해할 수 있는 글이다.

용어의 압박이 느껴질 수 있으니 백스페이스 누르는걸 추천한다.


저번에 들었던 웹전문가를 위한 5人5色 파워블로거 특강 사진들을 오늘 강사분들에게 보내드렸다. 그리고 그 다음번에 찍었던 5th OpenUp 행사 사진을 정리하는데, 울화가 치밀어오르더라.


그날 초점거리 135~200mm의 망원에서, 1/30초 셔터속도의 거의 차력같은 상황에서 사진을 찍었다. 이걸 no IS로 떨림 없게 찍어낸 나도 이상한 놈이지만, 당연히 찍기 전에 셔터속도만 봐도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수치니 좋은 사진이 나올 상황이 아니다. 이때는 그냥 눈 딱 감고 플래시 쓰면 되는거였다. 사진을 몇십만컷 찍어도 미련을 못버리는 내가 한심했다.


그날 촬영 환경은 뒷배경이 몽땅 흰색 화이트보드여서 18% 그레이로 측광하는 반사식 노출계의 DSLR로 대충 찍으면 당연 언더노출 나올곳이었다. 이걸 노플래시로 찍었으니 사진 다 버리는거다. 애초에 언더노출인 상태로 1/30초가 나올 상황이면, +1.5ev 올려서 적정 노출 맞추려면 1/10초로 늘렸어야 했다. 근데 1/10sec을 200mm로 찍으면 이건 인간이 아니라 부동의 콘크리트지. 원래는 200 x 1.5해서 1/300sec는 확보해야할 상황인데. 어째 손떨림은 안정적인 자세로 버틴다 치고 1/10초의 적정 노출로 찍으면 결과물이 좋아지나? 아니다. 모델이 계속 움직이는 이상 사진이 좋게 나올수가 없다. 1/60초로 찍어도 유령같이 움직인 사진이 나올까말까한데, 1/10초라니. 이거 정도면 엄청 번지지..


내가 만약 f/2.8이 아니라 f/2 렌즈를 사용했다면? 1/30sec 나올 상황에서 1/60sec 나올테니 좀 벌긴 했다. 1/60 역시 혹독한 환경이긴 하지만 그래도 샷의 30% 정도는 건졌을거라 생각한다. 근데 어차피 적정 노출로 찍으려면 노출보정 +1.5ev 해야하니 1/20sec은 맞춰줘야하네. 이건 아니잖아.


한스탑 더 열어서 f/1.4 렌즈를 사용했다면? f/2.8에서 1/30sec 나올 상황이 f/1.4에서는 1/120초 나오지. 넉넉하긴 하다. 이걸 +1.5ev 해주면 1/40 정도 할거고.. 그냥 셔터속도 확보용으로 +1ev만 해주면 1/60이면 충분할거다. 나머지 0.5ev는 RAW 노출보정으로 살짝 올려줘도 티 안나고.


가능한 렌즈는 200 가까이 하는 85mm f/1.2, 좀 아끼면 30만원대 85mm f/1.8 사도 충분하겠네. 아니면 600가까이 가는 200mm f/1.8 이라던가 ㅎㅎ 정말 어이없다. 이 미세한 차이때문에 렌즈 값 3배, 6배씩 하는걸 사야하다니..

근데 이 돈지랄 삽질을 할거면 차라리 거기 행사장 형광등을 하나 더 켜는게 훨씬 결과물도 좋고 촬영도 편했을것이다. 실제로 그날 OpenUp 다음에 했던 UX모임에서 형광등을 켜니 1/30초 나올 상황이 1/125~1/160초까지 나와버리니 이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 장장 2~3스탑이 더 확보되었다. PT따위 좀 안보여도 형광등 켜도록 설득해야지. 전부 다 정치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거라구.. 행사 준비하는 분들, 왠만하면 행사장 밝게 유지하자. 조금만 더 밝게 해주면 결과물이 완전 달라진다.


그리고, 사진을 찍으려면 혼신의 힘을 다해 찍고, 그러지 않으려면 아예 찍지를 말아야 한다는걸 느낀다. 웹트랜드 특강 강사중 한명은 사진을 아예 드리지 못했다. 쓸데없는 고집을 피우지 말고, 최대한 좋은 환경을 만들어두고 찍어야 한다는걸 깨닫는다.



난 측광이 잘 안되서, 찍은 사진들 보면 대게 언더노출로 나오곤 한다. 이걸 촬영 당시에 정밀하게 조절했어야 하는데, 그게 안되었으니 집에와서 편집하며 기절하는거다. 아니, 다시 말해서 내게 선택권은 없다. 언더노출로 찍어도 1/60초인데 그걸 더 밝게 찍으려면 1/40 밑으로 내려가야하는거다. 이러면 사진이 잘 나올수가 없다. 내가 생각하는 '인물이 뽀얗게 나오는' 노출보다 -1ev 낮게 찍히면 RAW의 관용도를 이용해서 +1ev 정도 올려서 노출보정을 해준다. 그나마 명부니까 +1ev 해도 노이즈가 안올라오지.. 암부였으면 저번 네이버 모바일 간담회 사진처럼 자폭했겠다.


더러우면 컬러 콘터미네이션 각오하고 플래시 쓰던가, 아니면 돈 왕창 써서 1.2 렌즈 사던가. f/2.8에서 1/60sec 나오니까 f/2면 1/120sec이고, f/1.4면 1/240sec 나오겠네. 완전 천국이네 아주. 나한텐 EF 100mm f/2.0이 딱인것 같다. 다음번에 여윳돈 생기면 그걸 최우선으로 구입해야겠다.


오늘의 교훈

"스포트라이트 없는 행사장에서 스크린을 배경으로 인물을 찍지 말라"

"안될 것 같은 셔터속도면 그냥 각오하고 플래시 쓰자."


피사체가 한발자국만 움직여도 화벨부터 뒤틀리고, 노출이 1/800부터 1/40까지 요동친다. 이를 어떻게 해야하나? 측거점 연동 스팟측광이면 될라나, 아니면 측광 분할면이 더 많은 플래그십으로 가야하나. 다이얼을 조절하기도 빠듯한 시간들이다. 촬영은 정말 심각한 노가다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