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

[DC펌] 해적의 역사(2)

MIRiyA☆ 2006. 7. 13. 05:30

[DC펌] 해적의 역사(2) by 미트볼

 

 

 

첫번째 시간. 개때근성의 원조, 해양민족


때는 한참 이집트 문명이 전성기를 누릴 무렵인 기원전 13세기. 지금으로부터는 무려 사천년 전이죠. 환빠(역갤 용어, 환국을 믿는 빠돌이를 뜻함)들은 한참 환국이 바빌로니아로 대제국을 이룰 때라고 한다지만, 그까이 꺼 수메르나 바빌로니아까지는 우리가 먹었나보지 하고 대충 넘어가도 되겠죠? 이 글에서 그건 중요하지 않으니까요.

네 좋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본격적인 해적의 역사 첫번째를 맞이하여, 이 시간에는 가장 먼저 이 해적질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조낸 수수깨끼 민족, 바로 해양민족(sea peoples group)에 대해서 알아보겠어요.

해양민족은 한때, 고대 지중해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매우 무시무시한 집단이에요. 이들의 원조는, 이집트 역사가들의 주장에 의하면 에게해나 아드리아해 같은 여섯 지방에서 살던 공격적인 이주민이었대요. 물론 아직까지도 해양민족이 정확히 어떤 넘들이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어요. 아마 이집트 역사가들도 그딴 건 알고 싶지 않았나봐요. 여하튼지간에, 언제부터 이 색휘들이 배를 타고 짱꼴라 식으로 대규모 해적러 러시를 했냐면, 기원전 13세기때부터라는군요.

그렇다면 지중해에 언제부터 배가 다녔길래 이런 날라리 민족이 생겼을까요. 당시에 해로라는 개념이 있긴 있으니까 해적질도 해먹겠죠? 지중해에 최초로 배가 다니기 시작한 것은 무려 기원전 30세기 일이래요. 까마득히 먼 옛날이죠.


여기서 그럼, 잠시 짚고 넘어가는 뜻에서. 원시시대의 배와 고대의 배해 대해 좀 알아볼까요?

원시시대부터 인류는 배를 타고 댕겼어요. 땟목을 엮어 만들거나 통나무의 속을 판 배가 시초였죠. 당시의 배는 원시적인 노를 이용하여 조류와 인간의 완력을 통해 다녔대요. 선사시대 우리 선조들은 이 배를 통해 귀중한 어로자원을 확보함으로써 우리 문명을 발달시켰죠. 초기의 배는 언제 어디서 가장 먼저 만들었는지 아무도 몰라요. 아마 전 세계에서 거의 같은 시기에 만들기 시작했나본데, 당시에는 지역에 따라서 통나무를 비롯하여 갈대, 대나무, 가죽, 파피루스 등의 재료로 만들었다고 하며 현재에도 전통배로 남아있는 지방이 있어요.

 

 

<전통적인 통나무배입니다. 지금도 저기 폴리네시아나 그런 데서 원주민들이 배를 만드는 방식이에요. 큰 통나무 하나를 판다음, 불에 그슬려서 타고 다니는 배라는군요>

 

 

<이것은 저 이집트와 메스포타미아에서 썼다는 파피루스 배예요. 다용도로 쓰는 파피루스를 엮어 만든 나룻배 같은 거지요.>

위 그림은 기원전 29세기에 메스포타미아 점토판에 남은 그림이라고 해요. 돛이 언제부터 쓰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기원전 29세기에는 있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거라 할 수 있어요. 지중해의 선박 기술은 이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발전하여, 기원전 20세기 쯤에는 우리가 많이 보는 갤리선이 일반화 되지요.

발전된 선박기술은 당시 알려진 서방세계, 그러니까 로마 같은 촌구석은 빼고, 메스포타미아나, 이집트, 그리스, 크레타 같은 지역을 동지중해 무역권으로 엮어버렸어요. 그리고 이 무렵, 바로 최초의 해적집단이라고 할 만한 루카가 등장하게 되는데, 사실상 우리가 이 연재를 통해 공부할 인류 최초의 공인된 해적단이라고 할 수 있죠. 이들은 기원전 14세기부터 미케네 문명이 발달할 무렵에 출몰했는데, 에게해와 키프로스, 이집트를 운행하는 상선들을 약탈했다고 해요!

 

 

 

[그림액박]

 

<전문적인 해적집단, 루카의 본거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의 지도예요. 지금의 터키, 그러니까 과거 히타이트제국의 영토였던 소아시아로군요. 원문에서는 Lukka country라고 나온 것을 봐서... 해적집단 루카가 제국이 힘을 잃은 틈을 타서 일종의 국가 비슷한 것을 만들어, 나중에 다른 해양민족과 합류했다고 할 수 있겠어요.>

그런데 이들이, 기원전 13세기의 복잡한 정세 때문에 해양민족과 합류해버리면서 이집트가 재수없게 몰매를 맞는 사태가 발생해요. 이주민이나 난민들은 사실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울 때 생기는 거잖아요. 예컨대, 나라가 멸망한다거나, 전쟁이나 기근이 일어난다거나, 당시 기원전 13세기 정세가 딱 그랬던 거예요.

자, 그럼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기는데요. 왜 그들은 멸망한 걸까요? 여기서 역사가 아이러니라는게 들어나는데요. 실은 미케네 문명의 멸망과 해양민족의 성립도 경우였어요. 기원전 30세기, 원래 미케네 문명이 있던 자리에는 그 찬란하디 찬란하던 크레타 섬의 크레타인들이 도시를 세워 번성하고 있었어요. 일명 '미노아 문명'이라고 하는 거예요. 이 문명의 존재는 1900년 영국의 고고학자 아서 에번스가 크노소스 궁전터를 발견하면서 세상에 알려졌어요.

뭐 어느 분께서는 서방 역사가들이 지네 문명이 우월하다는 걸 입증하려고 과대포장했다고 하는데 그건 넘어가요. 크레타에 크노소스 궁전을 포함하여 수준높은 문명의 흔적이 있는 것은 사실이니까. 미노아 문명은 이 섬을 중심으로 번창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기원전 15세기 무렵에 배를 타고 온 요상 야리꾸리한 인간들이 쳐들어와서는 크레타인들을 다 죽이고선 자기네들이 다 먹어버렸어요. 학자들은 그들이 그리스이 미케네 출신이라 추측하고 있고, 그래서 크레타 멸망 이후 문명을 미케네 문명이라고 불렀던 거예요.

그럼 미케네 문명은 어쩌다 아작이 났을까요?  천재지변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대요. 기원전 12세기에 크레타섬에 거대한 화산폭발이 있었는데, 그때 제대로 타격을 입어서 끝장이 났다는 거지요. 아무튼 이 사건이 당시 사회에 큰 지각변동을 일으켰으며, 이때부터 해양민족이 날뛰기 시작했다고 역사가들은 생각하고 있지요. 마치 기원전 15세기에 미케네가 보트 피플로 크레타를 아작낸 것처럼.

미케네 문명은 그렇게 멸망해버리고, 찬란한 철기문명을 자랑하던 히타이트 제국도 같이 쇠퇴하기 시작했어요. 그것도  해양민족의 손에 의해서 말이에요. 최소한 여섯 부족 이상이 작심하고 연합해서 해양민족에 참여하는데, 이집트 역사가들은 그 이름을 이렇게 적고 있어요.

샤르다나, 데니엔, 펠리셋, 세켈레스, 웨세슈, 트케제르(이름도 참 어렵죠) 지금의 리비아나 발칸, 소아시아 지방의 민족들로 추정되고 있는데, 나중에 해적집단 루카까지 합세하면서, 이들은 이집트를 위협하기 시작했어요.

 


 

[그림액박]

 

<이집트의 주적이었던, 샤르다나 전사들을 묘사한 스케치, 이들이 해적집단 루카에 적극 참여하여 시리아 해안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대요.>

기원전 1207년 일이에요. 당시 이집트는 그 유명한 파라오 람세스2세의 치하하에 번성을 구가하던 때였죠. 그래서 더욱 술에 취했다 공격당한 사람마냥 요란법석을 떨었어요. 그래도 람세스2세는 매우 유능한 군주였기에, 공격에 잘 대처를 했죠. 파라오는 샤르다나 해적들을 소탕하여, 해군 용병으로 써먹을 정도로 회유책을 부렸고, 시리아의 부족들을 공격하여 국경선을 다졌어요. 그러나 람세스의 아들인 메렌푸타가 즉위하면서 이 해양민족 때거지들이 골드러시를 단행해버렸죠. 이집트 땅은 비옥하고 살기도 좋으니까, 쉬밤 우리 세력 조낸 크니 저것들하고 한번 맞짱 떠보자는 식으로요. 한마디로 불법 이민이라고 해야겠는데. 람세스의 후예는 불법 체류자들을 용서치 않았고, 결국 전쟁이 일어났어요.

 

 

 

<이집트 군대와 싸우는 해양민족들>

 

 

 

[그림액박]

 

<불법체류자들을 싸그리 잡아버린 이집트 군대, 이집트인들은 이들의 씨를 말리려고 1만 오천명의 거시기를 짤라버렸대요, 덜덜>

이집트군은 큰 승리를 거뒀어요. 전리품으로 적 전사들의 거시기를 짤라왔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놈들은 저글링 습성이 아직도 남아버려서 그 후에도 여러 차례 전투를 해야만 했어요. 기원전 1168 람세스3세 때 벌어진 나일강 삼각주 해전이 그 대표적인 전투예요. 어쩌면 해적 습성을 지닌 해양민족에게 가장 어울리는 전투라고 할 수 있어요.

 

 

 

<해양민족의 습격루트를 그린 그림이에요. 이들은 육지로는 시리아쪽에서, 바다로는 나일강 삼각주쪽으로 쳐들어와서 이집트를 난감하게 했어요>

 

 

 

 

<메디나트 아부 비문에 그려진 대규묘 해전 그림... 결과는 이집트의 승리!>

이집트는 이 여러 번에 걸친 전투에서 승리하여, 승리기록을 비문에 남겼어요. 그 비문은 당연히 상형문자로 쓰여있는데, 대부분 북쪽의 야만인들을 물리친 파라오를 칭송하는 내용이지요. 뭐 이런 식이에요.




프롤로그. 메디나트 아부 비문, 졸라짱쎄 우리 파라오!

"나는 신의 아들이돠아아!!"

군주들 중에서도 최강인 우리 파라오께서 부르짓으셨다

우리 파라오는 졸라짱쎄셔서 모든 왕들 중에서 최강이셧다

히타이트, 미케네, 다이기셨따 다덤벼도 다이기셨따 우리 파라오는

천하에서 가장 힘쎈 사나이셨따.

"으악 제기랄 도망가자!"

눌러 살러온 샤르다나인들 도망갔다 우리 파라오는 짱이셨다.

그래서 샤르다나새퀴들은 도망간 것이다

역사는 꼐속된다

(중략)

213장. 우리 파라오는 여전히 위대하셨다.

우리 파라오는 여전히 위대하셧다

그래서 해양민족을 나일강 삼각주 앞에서 아작내기로 하셧다

그래서 해양민족는 비상이ㅓㄱㄹ렸따

"씨발 파라오가 쳐들어온대"

"그래 싸우자"

하지만 우리 파라오는 신의 아들이라서 위대하셨따

그래서 짱이셔서 해양민족은 결국 다  거시기가 짤리고 말았따

우리 파라오는 거지새퀴들이 붕가붕가 못하게 하기로 하셨던 것이다!

(후략)



하지만 이 열광적인 이집트 사가의 칭송에도 불구하고, 해양민족들은 결국 정착하고 말았대요. 당시 이집트 땅이었던 시리아 남쪽 해안가지대에 말이지요. 그 땅은 이집트의 영향력이 미치던 곳이었는데, 결국 이집트로써는 자기네 땅 잃어버린 꼴이죠 뭐. 그 후에는 잘나가던 파라오의 제국도 히타이트처럼 쇠퇴해서 두 개로 갈라지다, 앗싸리아제국의 지배도 받고 점점 쇠락의 길로 걸어갔다는군요.

아무튼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그렇게 깨지고도 씨 피플들은 정착했다! 라는 거죠. 그리고 정착한 후로부터는 무기를 버리고 배도 태워버리며 농사나 지으며 살았다는군요. 그들은 아마 지금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조상일지도 모르겠네요. 최근 누가 해양민족의 정체를 밝혀냈다는데, 솔직히 그런 건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진정 중요한 것은, 훗날 기원후 16세기, 우리의 버커니어들이 이 이야기에 감명받아 저 지구 반대편의 신대륙에서 똑같은 짓거리를 했다는 거예요.

이것을 통해 알 수 있는 건? 역사는 반복된다는 거죠. 뭐. -_-

<계속>

다음 화에서는 로마시대의 해적과 그들을 싸그리 토벌한 폼페이우스 마그누스에 대해 배워보지요.

'밀리터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승조원이 물에 빠졌을때  (0) 2006.07.20
해양감시와 해전  (0) 2006.07.16
러시아 vs 일본  (0) 2006.07.14
[DC펌] 해적의 역사(1)  (0) 2006.07.13
[스크랩] 수기 전문  (0) 2006.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