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I&사용성 이야기/불편함,사용성

어려운건 나쁘다.

MIRiyA☆ 2007. 10. 1. 19:56
일부 얼리어답터만을 겨냥하지 않고 대중적인 판매를 목적으로 한 제품에서 과연 매뉴얼이라는 것은 필요한 것일까? 이 말은 다시 말해, 제품의 조작을 어렵게 만들어 매뉴얼을 봐야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만들어야 하냐는 의문으로 바꿔쓸 수 있다.

저번 추석 때 차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가는 길에 아버지가 차에 빌트인 되어있는 네비게이션을 조작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으셨다. 어머니는 평소에 매뉴얼을 보고 좀 배워두라며 핀잔을 하셨고, 아버지는 슬슬 나이가 먹어가며 기계 조작이 힘들어진다며 한숨을 쉬셨다.

하지만 내가 볼 때는 이 문제는 아버지가 나이든 탓도 아니요, 매뉴얼을 세번 정독하지 않아 생기는 문제도 아니다. 네비게이션이 터무니없이 어렵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목적지를 검색하는데 뭔 놈의 번지수까지 입력해야할까? ‘구’도 바라지 않는다. ‘동’까지 쳐도 화면에 표시해줘야 하지 않을까? 인터넷에서 지도검색하며 확대하고 축소하며 목적지 찍어가는 리치한 경험을 했던 내게 지번을 입력하라는 네비게이션은 구시대의 유물로만 보일 뿐이다.

DSLR 유저들 사이에는 “구입 후 매뉴얼 3번 정독”이라는 자주 쓰이는 말이 있다. 초보 유저들이 몇가지 기능을 모르거나 혼동하여 질문글을 올릴 때 답변에 많이 붙는 말이다. DSLR은 노출부터 측광에 구도에 벼라별 신경쓸 것도 많고 사진 하나 찍으려면 배울것도 많다. 일단 버튼부터 엄청나게 많지 않나? 그래서 메뉴얼을 세번 정독하라는 말을 이해한다. 하지만 대중에게 빠른속도로 보급되어가는 네비게이션이 이런 DSLR만큼 어려워서야 쓰겠나?

오오 세상에, 두뇌가 명석하여 이해력이 뛰어나고, 심지어 포토그래픽 메모리를 타고난 우리 아버지가 나이 드심을 한탄하도록 만든 못된 제품이라니.. 이런 UX는 최악이다. 대체 무슨 센스일까? 네비게이션의 본질적인 기능 자체는 잘 동작한다. 하드웨어와 코어는 정상이란 뜻이다. 다만 그 기능을 활용하는게 너무 어렵다. 소프트웨어가 센스없게 만들어졌다는건데, 내가 요즘 Web2.0의 예술적인 UX에 푸욱 찌들어서 당연한걸 당연하지 않다고 느끼는걸까?

소프트웨어가 가진 모든 기능은 한 화면에 늘어놓고 훈장처럼 장식하라고 있는게 아니다. 최대한 안보이게 갈무리해야한다. Simple is BEST라고 하지 않던가. 한 화면에 보이는 많은 기능은 ‘풍성하고 알찬 기능’이 아니라 ‘너저분하고 복잡한 기능’이다. 유저가 행동하는 순간순간에만, 원하는 타이밍에만, 즉 적절한 위치와 타이밍에만 보여야한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예전 유저들의 손에 익은 익숙함마저 일정부분 희생하면서까지 오피스 2007 리본 인터페이스의 혁명을 가져온것도, 애플이 뭐라 더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화려하면서 동시에 쉽고 뛰어난 인터페이스를 가진것도 그 때문 아닌가.



어려운건 나쁘다. 쉬운건 좋다.

대부분의 대화상자는 한 주제의 선택사항과 두개의 Y/N 버튼이면 충분하다. 주제가 두개 이상으로 넘어가게 되면 너저분해진다. 이전/다음으로 딱 자르고 다음 페이지로 넘기라. 한 개를 완성하지 못하면 다음 것을 입력할 수 없을 경우, 혹은 다음 단계에서나 필요한 설명의 경우 다음 단계에 보이는게 당연하다. 이건 대부분 지켜주더라.

기능은 시선의 이동 경로를 따라 순서대로 질서정연하게 줄세워 배치가 되어야 하고, 쓰든 안쓰든 메인 작동에 영향을 안주는 사이드 옵션은 메인보다 더 강조되어서는 안된다. 중요한건 커야하고 중요치 않은건 작아야한다. 여러 서비스를 다루는 포탈 등에서는 서비스의 인터페이스들을 전사적으로 기준을 맞춰 정돈하여한다. 이용자들이 접하는 비슷한 경험은 누적되면 누적될수록 발전되어나가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알게 모르게 사용 패턴에 영향을 주게된다.

사람도 동물이다. 본능에 충실하게 만들어야 할 것 아닌가. 이용자가 얼마나 게으른지, 얼마나 사전 지식이 없는지를 염두해두어야 한다. 그들은 제품의 구석구석을 다 아는 개발자나 기획자가 아니다. 상품화된 시스템을 팔아먹고 이용자가 잘 쓰게 하려면 어떻게 할텐가? 방문해서 1:1 상담을 하거나 박스에 첨부된 백과사전식 매뉴얼로 하나하나 알려줄텐가? 안된다. 그건 아트가 아니다. 딱 보면 무슨 기능인지 알도록 하는 센스가 필요하다. 유저가 알아서 다 하도록 처리해야한다.

그들의 정신 저변에 깔려있는, 인생을 통틀어 전자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하며 얻은 반복적인 관념을 활용해야한다. MP3 플레이어를 보라. 100가지 제품중 99가지 제품은 재생 버튼이 ▶ 이런 모양으로 생겼을 것이다. 볼록 튀어나온 모양은 뭔가 누를 수 있는거고, 빨간색 글씨나 굵은 글씨는 중요한거다. 구글, 네이버, 다음의 검색 결과를 비교해보라. 파란색 글씨는 링크고 검정 글씨는 설명, 초록 글씨는 주소다. 이 또한 이용자의 익숙한 경험을 이용하는 좋은 예다.

대부분의 서비스나 제품은 ‘지극히 당연하게’ 만드는게 옳다. 뭔가 혁신적이고 굉장히 튀는 제품은 돈벌기 힘들다. 검색 서비스들 보면 별게 다 있다. 실사판 누님이 나와서 찾아주는 검색엔진도 있고(이름이 기억안남..), 검색 결과를 트리모양으로 만들어주는 녀석도 있고(MS쪽이던가..), 심지어는 상담원과 채팅하며 수동으로 찾아서 알려주는 엽기적인 검색엔진도 있다. 이런게 뭐 구글이나 네이버처럼 대중화 되던가? 그냥 실험용으로 만들었을 뿐이다. 웹 어플리케이션은? FLEX등을 쓰면 진정한 RIA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대충 화려하게’만 만들어 내놓으면 그걸 받아들이는 이용자들은 경험의 쇼크를 느낄 수 밖에 없다. 뭔 일을 하다가 뒤로 돌아가려고 백스페이스 버튼을 누르니 아예 페이지가 싸그리 바뀌어버리는 등등.. 요즘에는 그나마 백스페이스 문제등은 잘 배려해주고있는 것 같았는데, 초기에는 이런 어이없는 일이 많았던걸로 안다.

그럼 ‘지극히 당연하게’ 만든다고 내가 매너리즘에 빠지라고 선동하는건가? 그건 아니다. 내 말의 핵심은, 기획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세계와 이용자가 생각하는 현실 사이에 갭을 너무 크게 내지 말라는 뜻이다. 이용자가 가진 평균적인 수준에서 너무 건너뛰지 말고 ‘조금씩만’ 진보된 모습을 보여주며 ‘개편’이라는 단어를 쓰며 양념을 쳐 업그레이드한 티를 내자는 뜻이다.

플래시 등의 리치한 표현수단과 서비스의 만남중 제일 이상적으로 생각하는건 여기 다음 블로그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이미지, 파이, 동영상 업로더다. 플래시로 만들었지만 이게 어디 플래시라고 팍팍 티를 내던가? 저변 유저가 보기에는 그냥 버튼이고 체크박스고 웹 페이지의 연장일 뿐이다. 이런식으로 저항없이 이용자들에게 스무스하게 파고들어가는 센스가 바로 아트다.

이용자가 받아들이는 속도에는 한계가 있고, 앞선 기술 개발에는 거의 한계가 없다.
신기술을 이용자들이 쉽게 받아들이도록 거리를 유지하는 기획을 하며 마케팅도 잘하는 센스를 발휘하면 돈을 번다. 비록 기술은 잘 썼지만 기획이나 마케팅을 터무니없게 전개하면 이용자가 잘 받아들이지 못해 실패한다. 그리고 돈을 잃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며 ‘비운의 명작’이니, ‘저평가된 제품’이니, ‘시대를 잘못 타고난 제품’이니.. 냉정하게 바라보면 슬프지도 웃기지도 않는 태그가 붙는다. 그리고 그닥 돈을 잘 벌어주지 못하는 소수의 추종자, 매니아가 생긴다. 미놀타가 그랬고 펜탁스가 그랬다. 안드로메다로 날아간 제품 만들면 망하는게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뭐든지 투박한건 싫다

나만 그런게 아니고 옛날 사람들도 다 그랬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1448년 8월 3일 오후 두시에 어느 두메산골 김씨가 일갈하지 않던가. 잘생긴 사람 누가 마다하던가. 부드러운 사람 누가 마다하던가. 깔끔하게 만들고, 미래 개선을 위한 여지를 만들어놓고, 두려워하지 말고, 앞서가야한다. 본능에 충실해야한다.


다음 카페를 오랫동안 이용하던 나는 글쓰기 버튼이 글의 위 아래가 아니라 사이드바쪽에 있고, 수정 버튼이 위에만 있는 다음 블로그를 이용하는데 아주 어색함을 느낀다. 특히 수정 버튼이. 처음에 접할 때 더욱 심했고, 현재도 여전히 어색하고 불편하기엔 마찬가지다.


이는 위에서 말했던 시선의 이동 경로에 해당이 된다. 자기가 쓴 글을 위에서 아래로 쭉 훑어보다가 틀린 부분을 발견하여 수정을 하려고 하는데, 버튼이 왜 아래에 있지 않고 위에 있어야 할까? 밑에 댓글이니 트랙백이니 옵션 버튼들이 많아서 복잡한건 이해하지만 수정버튼이 위에만 있으니 딱딱하고 불편한건 부인할 수 없다. 극히 미세한 차이가 편리와 불편, 만족과 불만족을 결정짓는다.

아무튼 뭔가 만들 때 본능에 충실하게 만들고, 각 서비스간 인터페이스를 최대한 비슷하게 통일하여 이용자의 적응을 최대한 편하게 해주는게 좋지 않을까. 네이버 메일과 쪽지가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므로 같은 위치에 속하는게 좋은 예다. 쓸때마다 참 좋더라. 다음의 쪽지 시스템은 다음 메인과 커뮤니티쪽에서만 조회할 수 있다. 시스템이 플래닛에 물려있어 한메일 근처에 붙이기 좀 어려운 면은 이해하지만 항상 강조하듯 유저는 인정 사정 봐주지 않고 그런거 상관 안한다. 쪽지라는 시스템은 카페와 플래닛에서만 쓰기엔 아깝다.

대충 만들고 밀린 다음 작업 하려고 하지 말고 한번 만들면 보석처럼 빛날 수 있는 아트한 작품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그냥 민간인이라 이쪽 업체들의 내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장인정신의 탄생을 기대하고싶다.(내가 말하는 아트, 내지는 장인 정신엔 항상 상업적인 성공도 전제하고있다.) 뭐.. 항상 그렇듯 현실은 이상 세계가 아니니 꿈꾸는대로 돌아가지는 않겠지만.

아 네비게이션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삼천포로 빠졌는데, 네비게이션 좀 쉽게 만들어주시면 안됩니까. 출발지점 = 바로 여기, 도착지점 = 지도 보며 확대 축소 이동하다가 선택, 혹은 유연하게 검색. 나머지는 내부에서 알아서 처리. 잡다한 생각은 이용자가 하는게 아니라 개발자, 기획자, CPU가 하는거지. 터치스크린 네비게이션이니 담당자는 iPhone 사서 반성좀 하시길.

대중적으로 많이 팔아먹을 제품에서 복잡한 기능으로 연령대 제한하고 메뉴얼 보고 배워야 쓸 수 있다는 난감한 특징은 언젠가 반드시 독약으로 작용할 것이다. 방심하지 마라. 당신의 경쟁사가 더욱 깨어있는 생각으로 획기적인 인터페이스를 도입하면 지금 잘나가던 당신 제품의 메리트는  점점 떨어질 것이다. 제조업에서도 분명히 부드러운 혁신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