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강하기 몇일 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때 후배 얼굴을 보려고 학교에 미리 온 적이 있었다.
선배와 동기와 함께 오리엔테이션 전날 새로 들어오는 후배놈들을 만나
술집에서 찌게에 물 붓고 소주에 탕수육에 이것저것 먹이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조성..
필자는 술이 그닥 센 편이 아니라 적당히 먹고 잠을 자려고 빠져나왔다.
당시에 자취방을 하나 잡아놨는데, 개강하기 한참 전이라 짐도 보내놓지 않은 상태였다.
아따.. 열쇠로 문 열고 텅빈 방에 들어가보니 엄청난 냉랭함.
2월의 추위가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보일러도 없는 방은 너무나 추웠다.
이불은 커녕 매트리스만 하나 덜렁 있는 상태에,
유일한 의지 수단은 학교 잠바 하나뿐이었다.
몸을 새우처럼 웅크려 표면적을 줄인 후 잠바를 덮고 자려고 했는데,
체온은 점점 떨어져가고 온몸이 으슬으슬 떨린다.
그래도 방 안에서 자는데 죽기야 하겠냐만,
이거야 원 다음날 아침 입이 돌아가거나 발가락 동상 걸릴 분위기.
나는 내 엑스노트 LS75 SSMK를 꺼내 전원을 연결하고 그 열기로 밤을 보내려고 했다.
난로 대용이랄까.. 허벅지 위에 얹으면 뜨끈뜨끈해지는 내 노트북.
그 열 발산을 최대화 하기 위해 나는 GTA:SanAndreas를 돌렸다. -_-;
CJ가 화면을 뛰어다니자 내 노트북은 이내 냉각팬 회전수가 올라가며 뜨거운 공기를 토해냈다.
생각 해봐라, 노트북을 가슴에 끌어안고 잠바를 덮고 빈방에 홀로 쭈그리고 있는 장면을..
직접 겪기 전에 그 빈곤한 기분은 못느끼는 것이다.
이건 마치..
겨울에 편갈라서 눈싸움 하는데, 애들이 전부 나만 가운데다 놓고 눈을 마구 던져서 맞추는데,
가운데서 눈을 맞으며 몸을 웅크리고 있는것과 비슷한 기분이다.
새벽에 일어나보니 걷잡을 수 없는 쏠림.
속을 해결하고는, 해장을 하기 위해 편의점에 가서 김밥 한줄과 신라면 사발을 홀짝였다.
아침에 신입생들 오리엔테이션 받는 농심국제관 국제 회의실 뒤쪽에서 구경하고있는데,
어젯밤에 과음을 한 과가 많았는지 몇몇 애들의 안색이 썩 좋지 않다.
머지 않아 나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고,
어떤 녀석이 오리엔테이션을 듣다가 뺨을 잔뜩 부풀리고 입과 코를 막은채 달려나왔다.-_-;;
대리석 바닥에 국물을 뚝뚝 흘리며 어디가 화장실인지 몰라 허둥대던 녀석을 화장실에 안내한 후 등을 두드려주고,
대걸레로 흔적을 닦으면서 나는 비로소 선배가 된걸 느꼈다.
위에 선배만 있던 1학년에서, 후배를 챙겨주는 2학년이라..
지금의 나는 좋은 선배일까.
아무튼 나의 엑스노트와 GTA:SA 덕분에 동사는 면했다.
서핑하다 맥북 온도 낮추는 프로그램 관련 글을 보고 삘받아서 써봄.
ps. 그날 튀어나온 애들은 모두 3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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