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이야기/카메라 강좌

스트로보 없이 행사사진 촬영하기

MIRiyA☆ 2007. 12. 24. 19:18
나는 일주일에 두세번 실내 행사 사진을 찍는다.
회사가 주로 진행하는게 CEO들 대상으로 하는 지식행사들이고, 나는 전문 사진사가 아니며 회사 내에서 온라인 서비스쪽을 담당하며 곁다리로 사진 찍는 정도이다.

보유 장비는 Pentax K10D와 Sigma 30mm f/1.4 EX DC, Pentax 18-55mm f/3.5-5.6 ED AL이다. 수동 리케논은 빼자. 딱 보면 알다시피 행사 사진을 찍기에는 적당한 장비가 아니다. 짧디 짧은 30mm 단렌즈에 번들렌즈, 그리고 스트로보가 없다. 참석자들의 회사에 소속되어 캐논/니콘을 쓰는 게스트 기사분들이 펜탁스 카메라를 들고온 나를 보고 굉장히 신기해하는데, 나는 펜탁스 카메라로도 행사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싶었다. 기종에 휘둘리지 않는 사진사 본연의 자존심이랄까? 펜탁스는 풍경만 찍는 카메라가 아니니까.

촬영 장소는 거진 대부분 호텔의 그랜드볼룸이고, 조명 상태와 현장 상태는 호텔별로, 룸 별로 천차만별이다. 조명 상태를 보면, 그랜드볼룸 내의 일반 테이블 조명들은 백색광이 아니라 약간 누런끼가 도는 백열광이고, 조도가 그렇게 높지 않아 셔터속도 확보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 ISO를 400 정도 올리면 f/1.4 최대 개방에서 1/30초~1/60초 정도가 나오는 상황. 위치에 따라 혹은 측광에 따라 1/3초 정도의 끔찍한 셔터속도가 나오기도 하는데, 이때는 대다수 손떨림에 의해 흔들려버리기 일쑤이다. 내가 사용하는 K10D의 바디 내장 손떨림 보정 기능으로 어느정도 커버가 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지, 1/3초는 좀 심하지 않나. 피사체가 움직이고 있을 경우, 이렇게 느린 셔터속도에서는 사진 찍는걸 포기해야 하고, 행사장 전경 스케치 등을 할 때 행사장 구석에 서서 18mm 광각으로 스무방정도 연사를 날려 그중에 잘하면 한장 정도 뽑아내는 식이다. 바디의 한계 상 ISO를 800위로 올리면 컬러노이즈 때문에 도저히 못봐줄 사진이 나오게 되니, 마지노선은 400으로 놓았다.

행사 시작 40분 전에 행사장에 들어서서 조명을 체크한다. 천정의 색은 어떠한가? 천정의 모양은 어떠한가? 천정의 높이는 어떠한가? 조명의 색온도는 어떠한가? 혼합광이 존재하는가? 이를 휘휘 둘러보며 재빨리 파악하고, 테이블 위에 있는 냅킨을 하나 주워들어 45도 각도로 빛을 반사시켜 화이트벨런스를 맞춘다. (그레이카드가 없는지라 냅킨 신공,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어차피 모두 RAW 촬영하여 컴퓨터에서 미세 화이트벨런스 조정을 할테니.. )그리고는 앞으로 걸어나가 연단 위에 올라가 강연자에게 비추는 스포트라이트 빛이 밝은 편인지 확인한다. 그리고 나중에 사진을 찍었을 때 화이트벨런스 피커를 찍을 수 있는 흰색 물체가 있는지 확인한다. 주로 연단 가운데에 붙는 대형 명패나 참석자의 가슴에 붙는 명찰이 안성맞춤이다. 만약 피커를 찍을만한 흰 물체가 없을 경우, 임의로 눈에 잘 안띄는 곳에 냅킨을 접어서 올려놓는다. 보통은 흰 물체가 곳곳에 있으니 이런 수고까지는 할 필요가 없다.


 

일단 촬영 환경 체크는 마쳤으니, 측광 연습을 할 차례다. 위와 같은 사진의 경우, 아주 주의해서 찍어야 하는데, 가운데 하얀 부분에 측광을 할 경우 사진이 검게 나오고, 검정색 양복에 측광을 할 경우 사진이 하얗게 날아가버린다. 그중에서도 ‘최고경영자조찬회’라고 써있는 부분과 인물의 뺨 등에 하이라이트된 부분이 하얗게 날아가 못알아볼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자신이 쓰고있는 기종의 특성을 잘 파악해야 하는데, 내가 쓰는 K10D의 경우 센서의 특성상 명부 계조보다는 암부 계조가 좋으니 사진이 밝게 나오는것보다는 어둡게 나오는 것이 후보정에 유리하다. 더 쉽게 풀어서 말하면, 사진이 밝게 나올 경우 하얗게 날아간 부분은 거의 디테일 회복이 불가능하고, 어둡게 나온 부분은 포토샵에서 간단히 레벨 조정을 하면 살릴 수 있다는 뜻.



Canon EOS 30D, 24-70mm f/2.8L : f/5, 1/60sec, 24mm, ISO 1600


  Pentax K10D, Sigma 30mm f/1.4 EX DC : f/2.0, 1/30sec, 30mm, ISO 400

 

 위의 사진의 경우, 화이트벨런스와 수평의 중요성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샘플이다.
잘 보면 위 사진은 앞쪽 테이블의 테이블 보 색이 흰색인 반면, 저 멀리 나가면서 점점 색이 누릿해지는걸 볼 수 있다. 이건 넓은 행사장 환경을 고려치 않고 무리하게 스트로보를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스트로보의 빛은 자연광에 가까운 백색인데, 실내 행사장의 조명은 누릿한 빛이라 스트로보 빛이 닿은 부분은 희게, 닿지 않은 부분은 원래 행사장의 누런 빛을 띄게 되어 이상한 그라데이션이 생긴 것이다. 이 경우 RAW로 찍더라도 화이트벨런스 조정이 난감해지게 된다. 스트로보 빛을 기준으로 맞출 경우, 위와 같이 먼 부분이 누렇게 되고, 먼 부분 실내 행사장 조명을 기준으로 맞출 경우, 앞부분이 푸르게 떠버린다. 천진반의 태양권을 쓰는것도 아니고, 이렇게 넓은 실내에서 스트로보를 사용하다니 좀 의아했던 부분. 게다가 저 안좋은 천정 상태에 천정 바운스로 찍고있었다.(그리고 스트로보 옵션이 무려 강제발광+적목감소였다.) 사진에 남은 EXIF 정보만 봐도 그분이 카메라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사용하는지를 알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선택은 스트로보를 끄고 ISO를 쭈욱 올린 다음, 조리개를 최대 개방하고 손각대로 찍는 것이다. 24-70L f/2.8 줌 렌즈의 특성상 조리개 최대개방이 2.8 수준이라 내가 쓰는 단렌즈의 1.4보다는 4스텝 불리하지만, 캐논의 고 ISO 저노이즈의 유리함을 이용해 ISO를 1600 정도까지 끌어올리고 자세를 안정적으로 잡아 찍는다면 좋은 결과물이 나왔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RAW 촬영하여 화이트벨런스를 최대한 맞춘 다음, 비틀어진 수평을 맞추어주고 적당히 크롭하였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이 사진은 좀 힘들게 찍었다. 옷들이 다 흰색이라 검게 나와버리는데, 아무리 이 카메라가 암부계조가 좋아 어둡게 찍는게 좋더라도, 심하게 검게 나와버리면 나중에 레벨 조정을 하였을 때 노이즈 떡칠이 된 사진이 나오기에 촬영 당시 적당히 리뷰를 해가면서 파악을 해야한다. 어떤 경우엔 밝기 히스토그램이 완전 앞에 쏠려서 나오고, 시커멓게 나와버려 결국에는 측광을 내 손등에다 맞추어야 할 상황도 생긴다. (그레이카드만 사면 이것도 어떻게 더 쉬워질 것 같건만..)

일단 측광은 첫번째로 고려할 문제고, 두번째는 피사체의 구도와 포즈 아니겠는가. 4가지 이상의 구도로 최소한 10장 이상 찍은 다음, 집에 돌아와 가장 잘나온걸 뽑는 식이다. 앞의 첼로 연주자 팔 각도와 가운데 바이올린 연주자의 활 각도가 참 맘에든다. 중간중간 악보 넘기는 장면 등이 나온 사진은 B컷으로 판단하고 과감하게 삭제했다.

 

 

 

하얏트호텔 조찬 기본 에피타이저이다. 적당히 구워진 토스트와 과일, 버터, 토마토주스와 오렌지주스, 그리고 크로아상등이 보인다.(저기 베이컨이랑 스크램블드 에그 등이 더 나오는데, 먹으면 딱 아침에 졸리지 않을 정도만 배가 찬다.) 이 테이블들은 행사장 구석에 병풍으로 가려져있는 예비용 테이블이었는데, 음식 사진 찍는데 딱 좋았다. 내장 플래시는 약한 광량 때문에 위에서 말한 색온도 차이 그라데이션이 생길 가능성도 있고, 금속 식기류나 유리 물잔 등에 반사되어 번들거릴 가능성이 있어 사용하지 않았다. 나중에 58AF-1 같은 대광량 스트로보에 디퓨저 등을 달아 시도해도 아마 이보다 잘 나오지는 않을 것 같다. 조리개 f/5에 1/125sec의 아주 좋은 광량이었다. 풍부한 빛이 있는 상태에서는 스트로보를 안쓰는게 가장 자연스러울 것이다. 

 

 

 

광량이 풍부한 곳에서는 스트로보를 사용하지 않아도 이렇게 좋은 사진을 건질 수 있다. 조리개값 5.6으로 충분히 조이고도 셔터속도 1/45초를 낼 수 있었다. 행사 전날 미리 와서 조명을 체크했는데, 직광 스포트라이트가 무려 5개나 세팅되어있었다. 조도는 최대 출력의 70%로 적당히 강연자의 눈이 부시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밝도록 세팅 되어있었다. 강사가 이렇게 좋은 조명하에서 강연하는건 사진찍는 사람 입장에서는 참 고마운 일이다.

 

 

위 사진의 경우 그나마 건져본다고 올려봤는데, 강사분이 자유로운 포지션을 좋아하셨는지 스포트라이트가 비치는 연단에서 나와 테이블 앞의 어둠속에서 강연을 하는 난감한 상황이 벌어졌다. 빛이 머리 뒤에 있는 상황에서 얼굴에는 그림자가 생길 수 밖에 없었고, 후보정으로 과도한 레벨조정을 하니 안색이 누릿한게 그다지 좋지가 않다. 더 확대해보면 아주 디테일이 떨어져있는 모습을 볼 수 있어 가슴이 찢어지는줄 알았다. 이런 최악의 환경에서 필요한게 바로 스트로보인데, 나는 스트로보가 아직 없어 이런 환경에서 핸디캡을 무릅쓰고 찍을 수 밖에 없었다. 실내도 적당히 좁고, 광량도 스트로보를 압도할만한 조도가 아니기 때문에 대광량 스트로보로 임의로 빛을 만들어주면 적당히 커버되었을텐데.. 아주 아쉽다.

 

 

위 사진과 아랫사진을 비교해보자. 위의 사진은 강사에게 내리쬐이는 강렬한 스포트라이트 빛이 렌즈 안으로 들어가 난반사되어 생긴 현상이다. 사진 아래에는 초대형 플레어가 생겼고, 사진이 전체적으로 뿌옇게 나와 아주 보기가 좋지 않다. 18-55mm 번들 렌즈의 SMC 코팅이 어느정도 플레어를 커버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면 거의 버티기 힘든 환경. 후드를 끼웠음에도 빛이 들어와 결국 왼손 손바닥으로 비네팅이 안생기게 적절히 조절하여 빛을 가리고 촬영하였다. 사진 한쪽에 그래도 플레어가 살짝 보이는데 저 정도는 뭐 무시할만하다.

 

 

 

이건 다소 아쉬운 사진이다. 구도가 어정쩡하고, 노출이 살짝 오버되어 인물 얼굴의 디테일이 줄어들었다. 저렇게 미리 구도까지 잡아 연습을 했건만 실전에서 제대로 맞추지 못했으니 정말 아쉽다. 아래쪽에 리츠칼튼 호텔 마크가 잘린것도 그렇고.. 어정쩡한 구도도 마찬가지. 연단에서 말을 할 때는 포즈가 시시각각 바뀌기 때문에 구도 바꾸며 타이밍 맞춰서 찍기 바쁘다. 이런 사진은 보통 같은 사진을 30장 이상 찍게 되는데, 그나마 건진게 저정도니 아직도 내공이 부족하다. 어느정도 카메라의 특성과 현장 상태를 이해하는 정도의 내공이 쌓이면, 그 다음부터는 방심하지 않는 집중력이 곧 내공인 것 같다.

 

 

위 사진은 Minolta Dynax 5D를 사용하는 같은 회사 직원분인데, 자신은 아마추어라며 뒤로 살짝 빠지고 나만 사진을 찍게 되었다 ㅠㅠ 어찌나 눈치가 빠르신지, 강사분 강연이 끝나고 사인회 순서가 되자 고개를 들어 순식간에 천장 조명상태를 확인하고 테이블을 끌어다 밝은 조명 바로 아래로 옮겨주는 센스를 발휘해주셨다. 그리고 내가 카메라를 들어 미리 앵글을 잡으려 하자 자리에 딱 앉아 포즈를 취해주어 측광 연습을 도와주셨다 ㅠㅠ 이렇게 사진을 이해하는 사람이 같은 회사에 있을 경우 결과물에 대한 부담은 아주 커진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오오.. 역시 잘 나왔네~" 하지만, 잘 아는 사람이 보면 "뭐야.. 저 장비에 저렇게 못찍나?" 하고 생각할 수 있으니 말이다. 저렇게 앵글을 잡아주셨음에도 불구하고, 테이블이 저렇게 노출오버가 되어버렸으니 면목이 없다. 게다가 강연 끝나면 엘범 제작하여 강사분께 드린다던데! 대체 저런 사진을 어떻게 줘야한단 말인가..

아마도 저 경우는 K10D의 측거점과 노출 연동 기능을 켜 둔것에 이유가 있지 않나 생각된다. 측거점을 왼쪽에 맞추어 초점을 인물에 맞추는 동시에 노출이 인물에 맞게 되는데, 인물이 어두운 색의 정장을 입고있어 노출이 오버된듯.(스팟측광도 아니고 평균측광이었을텐데 측거점 연동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이건 잘 모르겠다.) 만약 노출이 테이블에 맞았다면 사진은 전체적으로 어두워지지만 나중에 후보정때 레벨조정으로 살려낼 수 있었을 듯 하다. 다음부터는 저렇게 자리 펴고 측광 맞추라고 배려해주는걸 보고 황송해하지 말고 뻔뻔하게, 최대한 연습하는게 좋겠다.

 

 

 

행사장 내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찍으려 했는데, 셔터속도 확보가 안되고 사람들이 워낙에 빨리 움직여 이런 사진밖에 건지지 못했다. 이 역시 스트로보를 쓰면 해결될 것 같지만, 저 뒤쪽으로 스트로보 빛이 닿지 않아 누런 그라데이션이 생기지 않았을까 걱정된다. 뭐 나름대로 속도감 있고 현장감 있어서 패스한다.

 

 

 

이 사진 역시 스트로보가 있다면 어땠을까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사진이다. 인물의 왼쪽 뒤로 크게 그림자가 져있는데, 심할 경우엔 검게 날아가버리기도 한다. 저기다 약한 광량으로 살짝 fill light를 줬다면 어땠을까?

 

 

 

 이 사진은 다소 애매하다. 밝게 나오긴 했지만 부분부분 노출오버가 보이고, 최대개방으로 인해 디테일이 썩 좋지가 않다. 살짝 언더로 찍었으면 해결되었을까? 저 정도 광량이라면 더 조이고 찍을 수 있지 않았을까? 정말 아쉽다.

아무튼, 스트로보가 없으면 정말 사진 찍기 어렵다. 밝은 주광에서야 막샷 날려도 흔들리지 않지만, 이 어두운 실내에서 내가 촬영을 할때면 "총쏘냐??" 소리를 듣기 일쑤. 왼팔 팔꿈치를 가슴에 바짝 대고, 오른손으로 카메라를 부드럽게 들고 얼굴쪽으로 당기며 코로 액정을 민다-_-; 숨을 고르게 쉬다가 흔들리지 않는 시점에서 타탁 타탁 연사.

그리고 가장 난감한건 누런 실내 색온도 상황에서 인물을 찍을때 얼굴이 누렇거나 벌겋게 떠버리는 경우인데, 정말 곤혹스럽다. 인물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스트로보를 쓰면 얼굴 색이 좋게 나온다던데..

요즘 고민중이다. 메츠 58AF-1을 구입하여 대광량으로 한번에 갈지, 아니면 그 돈으로 메츠 48AF-1 두대를 사서 한대는 스탠드에 세워두고 무선동조로 자연스러운 사진을 만들지가 고민. 사용하는 내공에 따라 결과물은 천차만별이 될텐데, 스트로보 두개에 디퓨저 달고 무선동조 쓰면 꼴사나워보이지 않을지, 엽기적으로 보이지 않을지 걱정이다. 강력한 한 개가 좋을까, 아니면 부분부분 보충해주는 작은 것 두 개가 좋을까?

그리고 스트로보 빛이 안닿은 부분에 생기는 그림자나 실내 색온도랑 달라서 생기는 그라데이션 현상은 어떻게 막을지 걱정이다. 이게 한두번 연습한다고 잘 찍을 수 있는게 아닐텐데, 스트로보 빛을 실내 백열광 색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